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역대 독일 연방의회 선거 (문단 편집) === 제14대 총선 (1998) === ||<-5> 1998년 9월 27일[br]{{{-2 총원: 669석, 과반의석: 335석}}} || ||<-2><#e20019> [[게르하르트 슈뢰더|{{{#fff '''슈뢰더'''}}}]] {{{#fff '''1기 내각'''}}}[br]{{{-2 {{{#fff '''345석'''}}}}}} ||<-3> 야당[br]{{{-2 324석}}} || ||<#e20019> [[독일 사회민주당|{{{#fff 사회민주당}}}]] ||<#46962b> [[동맹 90/녹색당|{{{#fff 동맹 90/녹색당}}}]] ||<#000000> [[CDU/CSU|{{{#fff CDU/CSU}}}]] ||<#ffed00> [[자유민주당(독일)|{{{#000 자유민주당}}}]] ||<#991000> [[민주사회당(독일)|{{{#fff 민주사회당}}}]] || || 298석 || 47석 || 245석[br]{{{-2 198석+47석}}} || 43석 || 36석 || [[90년대]] 말 [[독일]]은 [[독일 재통일|통일]] 후유증을 심각하게 겪고 있었고, [[1998년]] 시점에서 [[독일/경제|독일의 경제]]는 말 그대로 최악이었다. 실업률은 10%에 근접해갔고 많은 이들은 [[헬무트 콜]] 정부와 [[여당]]이었던 [[CDU/CSU]]와 [[독일 자민당|자민당]]의 능력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한다. 이에 98년 총선을 앞두고 헬무트 콜이 [[독일 총리|총리직]]에 출마하지 않고 [[볼프강 쇼이블레]]를 후계자로 삼을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지만 결국 98년 4월 헬무트 콜은 5선 도전을 선언했다. 한편 [[독일 사민당|사민당]]에서는 대표적인 당내 우파인 [[게르하르트 슈뢰더]]가 총리 후보자로 나섰다. 슈뢰더는 당시 [[유럽]] 정계에 막 유행하던 [[제3의 길]]을 주창했다. [[자본주의]]도 [[사회주의]]도 아닌 새로운 이념인 [[제3의 길]]을 추구한다는 슈뢰더는 신선한 돌풍을 일으켰다. 당시 슈뢰더 말고도 [[영국 노동당]]의 [[토니 블레어]], [[프랑스 사회당]]의 [[리오넬 조스팽]] 등이 [[1997년]]을 전후로 동시다발적으로 [[제3의 길]]을 내세우며 정권을 잡았다. 여론조사에서는 기민/기사+자민 연합과 사민+녹색 연합이 오차범위 내의 접전인 것으로 보였지만 개표 결과는 사민+녹색 연합의 압승[* 사회민주당이 단독으로 '''298석'''(창당 이래 최다 의석)을 차지했는데, CDU/CSU, 자유민주당이 확보한 의석을 더한 것보다 많았다. 거기에다가 구 [[동독]] 지역에서는 어차피 사회민주당이 원내 1당이 될 거라는 전제 아래 [[민주사회당(독일)|민주사회당]]에 대한 소신투표까지 있었다. 당시의 여론조사가 얼마나 [[유권자]]들의 생각과 동떨어졌는지 알 수 있는 상황.]이었고,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의 연정으로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총리직에 취임하면서 헬무트 콜은 16년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났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